게게게의 키타로로 유명한 일본 요괴만화의 거장 미즈키 시게루
친한파 만화가중 한명이며 한국에도 여러번 방문해서 한국의 여러 민담이나 신화를 취재해 작품에 쓰곤함
[도깨비]
*한국의 도깨비는 일본의 오니(도깨비.귀의 종류)와는 다르다.
도깨비는 한국요괴의 대표다. 일본식으로 말하자면 [귀(오니)]같은 존재지만,
공포스럽지는 않고, 성격은 낙천적이며 친해지기 쉽다.
사람을 유괴하거나, 소의 똥을 만두로 속여 사람에게 먹인다거나
하는 것을 즐기거나 하는 장난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도깨비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인간과 씨름을 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일본의 갓파와 꽤 비슷하다.
또, 도깨비는 인간과 지혜를 겨루는 것을 좋아해서 지면 크게 분해서 몇 번 이든 도전해온다.
하지만 도깨비는 성격이 좋아서 도깨비에게 티나지 않게 지면 금이나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다.
한국에서 이유 없이 갑자기 돈이 사라졌다는 사람을 [도깨비에게 홀렷다]라고도 한다.
도깨비는 이렇게 복의 신인 측면이기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도깨비는 덜렁대는데(잘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인간에게 돈을 빌리고도 갚은 것을 잊어 몇 번이고 돈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도깨비가 나타나는 것은 산이나 삼림, 폐가, 우물, 변소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조금 어두운 장소를 좋아하고, 밝은 곳을 싫어한다고 한다.
[돗가비]
한국에서 유명한 요괴로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들에게 [돗가비가 온다]고 말하면
바로 얌전하게 된다고 한다. 어둠이나 안개가 낀 날에 갑자기 불덩어리가 타오르는데,
그것이 돗가비다. 불덩어릴가 빨갛게 되거나 파랗게 되거나 하면서 커지고,
이윽고 긴 꼬리가 나와 산에서 평지를 돌아다닌다.
또, 불덩어리가 아니라 긴 다리 하나가 나오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일본의 갓파 같은 성격을 가져 하천에 가재를 잡으러 가는 사람들이
이 돗가비의 나쁜 장난에 휘말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본의 요괴 "벵케이보리의 카와타로(에도성의 갓파)" 같은 돗가비도
하천에 오는 사람들을 부르기도 하지만 [김씨]라고 밖에 말하지 못한다.
즉, 누가 오던 [김씨]라고 밖에 부를 수 없다고 이해된다.
이런 때에는 다리 한개의 모습으로 인간을 몹시 놀려대거나 비웃으면서
뿅뿅뛰어 산으로 도망친다. 또, 하천에 와서 가재를 가득 잡고 기뻐하면,
이게 모두 소의 똥이거나 하기도 한다. 이것도 돗가비의 수작이다.
돗가비는 한 마리가 아니라 잔뜩 있어, 인간과 씨름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갓파와 비슷하다.
[손각시]
한국에는 인생에 불만을 품은 채로 죽은 자는 그 혼이 나쁜 작용을 해
귀신이 된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손각시라고 불려지는 귀신은
성인에 도다른 처녀가 그 사랑의 관능적인 맛을 모른 채 죽어버렸기 때문에
미련과 원한에서 악귀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 처녀귀신 손각시는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경험을 하지 못한 원한으로
다른 젊은 여성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심하게 질투해,
달라붙어 악행을 저지른다고 한다.
그런 손각시에 씌이지 않기 위해 젊은 여성을 가진 어머니들은 주의를 기울였다.
딸이 병에 걸리면, 무녀를 불러 손각시의 저주인 지 아닌 지 확인한다.
빙의된 경우에 당장 굿을 의뢰해 가지각색의 공물을 준비하고 무녀는 방울을 치며 춤을 춘다.
그리고 딸에게 빙의된 손각시를 옷가지에 옮겨
그 딸의 모든 옷가지를 빈 방에 쌓아놓고 하루 종일 굿을 한다.
만약 그럴 틈도 없이 딸이 저주에 죽을 경우
그 딸도 손각시가 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매장할 때에 특별한 의식을 치룬다.
일단 죽은 딸에게 남자옷을 입혀 보통 넣는 곳에 반대되게 묘지를 파고 묻어
관의 주위에 가시가 잔뜩 있는 나뭇가지를 묻는다.
이것은 남성과 간접적으로 접촉하는 것으로 위로해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자유혼(부유령)]
한국에는 사람이 죽으면 친척이나 아는 사람이 고인의 옷을 갖고 마당에 서,
지붕을 향해 [복, 복]하고 이라고 반복해 말한다.
또는 [돌아갈 때, 옷이라도 가져가라]라고도 한다.
이것은 숨을 멈춘 직후에 사람의 "자유혼"이 아직 저승에 가지 않고,
집 주위를 얼찐얼찐거려 자신이자신의 옷을 보면 돌아온다고 생각해서이다.
즉, 죽은 사람의 "자유혼"을 다시 불러들이려는 행위인 것이다.
자유혼은 육체를 떠나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한 혼으로,
자유혼이 저승에 도다르면 그 사람은 죽고 자유혼을 불러들이는 것이 가능하면
그 사람은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자유혼의 경우
그 소유자가 살아있는 경우라도 순간적으로 육체를 떠나가는 일이 있다고 한다.
물론 떠나간다고 해도, 그 사람이 살아있는 한, 저승까지는 가지 않는다.
그리고, 저승으로 향하는 영혼을 쫓아가는 힘이 있다고 하는 것이 무녀다.
일본에도 [혼부르기]라는 풍습이 있는데 완전이 같다.
사람이 죽을 것 같은 때 지붕에 올라 우물의 아래를 향해
큰 소리로 혼을 부르는 행위를 했다고 한다.
[원혼]
한국에서는 생전 원한을 품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혼은
원혼이라는 귀신(유령)이 된다고 한다.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누명을 쓰고 죽은 자들 역시 원한의 상대에 대한 보복이나
현세에 남은 미련으로부터 원혼이 되기 쉽다.
원혼에 씐 사람은 정신에 이상을 일으키거나 병에 걸린다고 하며,
무슨 일을 하여도 잘 되지 않고, 생각지 못한 천재(天災)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옛날 봉상사라는 절에서는 이 원혼을 후히 제사지내어,
귀신으로 변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 했다.
절의 동쪽에 제사지낸 것은 날붙이에 의해 죽은 자,
수해나 화재 등의 사고 혹은 도둑을 만나 죽은 자,
남에게 재물을 빼앗기고 죽은 자, 타인에게 처첩을 강탈당하고 죽은 자,
전쟁에서 얻은 상처로 죽은 자, 천재지변이나 역병으로 죽은 자들이었다.
절의 서쪽에는, 맹수에게 당하거나 독충에 쏘여 죽은 자,
전투에서 죽은 자, 지진으로 죽은 자, 쓰러지는 건물이나 담에 압사한 자,
동사한 자, 나무나 절벽에서 추락사한 자, 위급하여 자살한 자, 난산 끝에 죽은 자,
자식을 얻지 못하고 죽은 자 등,
동서 2좌 15위로 나누어 청명 7월 망일(만월일), 10월 망일의 연 2회 제사를 행한 듯하다.
제사를 받지 못한 원혼은 여귀(역귀)가 되어 변괴를 일으키므로,
이를 막기 위하여 조위(弔慰)하는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금시조]
금시조는 오래된 무덤을 수호하는 조선의 신으로,
무덤 속의 재보 등을 몰래 훔치려 하는 자가 있으면 홀연히 나타난다.
호랑이 몸에 독수리 날개가 돋아 있고, 뱀과 같은 목을 하고 있으며,
도적을 괴롭혀 죽인다고 하는데 날개로는 도둑을 때리고, 발톱으로 피부를 도려내며,
목으로 휘감아 교살한다. 의미도 없이 고분의 물건을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함이리라.
일반적으로 금시조라 하면 인도의 신조 ‘가루다’ 의 일본명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의 금시조와 완전히 동일한 존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재보를 지킨다고 하는 유의점은 인정된다.
고분 안에 들어가면 왠지 금시조 같은 존재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 같은 사람은 남들에 비해 고분의 물건을 집으로 가져가고 싶어하는 성격이 강하기에,
자주 금시조가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된다. 그래서 나는 고분에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다.
그것은 이처럼, 금시조와 같은 존재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동천사의 용]
신라 제 38대 원성왕 11년(795)의 일이다.
당나라로부터 사자가 와, 1개월여 체재한 후 귀국하였다.
마음이 놓인 원성왕은 오랜만에 정원으로 산보를 나갔는데, 기품 있는 두 명의 여성을 만났다.
여성들이 말하길 자신들은 용의 처로, 전일 귀국한 당의 사자들이 둘의 남편들과
또 한 용을 붙잡아갔다고 호소했다.
사자와 동행했던 하서인(황하 이서에 사는, 한민족이 아닌 사람들)이
요술을 부려 용을 작은 물고기로 바꾼 후, 죽통 속에 넣어 가져갔다는 것이다. 하여
그 죽통을 되찾아 주십사 하고 왕에게 직소를 올린 것이었다.
왕이 이를 승낙하자 두 여성은 소리도 없이 모습을 감추었다.
왕은 지체 없이 친히 말에 올라 사자 일행을 쫓아가,
하서인에게 이유를 말하고 죽통을 되찾았다.
왕은 그 죽통 속의 물고기를 동천사의 연못에 풀어주었다.
그러자 연못 속에서 한 줄기의 물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고,
그 안에는 용의 모습이 뚜렷이 보였다.
왕은 이로써 우리 나라의 수호신을 다른 나라에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다며 안도하였다.
용 역시 기뻐하는 듯했다.
한편 당나라의 사자들은, 비록 소국일지라도 업신여길 수 없다며 놀랐다고 한다.
[불가살 (불가사리)]
고려 말기(14세기 말)에, 철을 먹는 괴물이 있었다고 한다.
철이란 철은 닥치는 대로 먹어 버렸기 때문에 나라 안의 철이 바닥날 지경에 처하여,
결국 괴물을 죽여 버리려 하였으나 어떤 수를 써도 죽일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불가살, 즉 ‘죽일 수 없는 것’ 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원래는 너무나도 지루하던 어떤 사람이 밥알을 뭉친 것을 짐승의 모양으로 만들어,
그 주둥이에 침을 꽂자 우물우물 하고 먹어 버렸기에,
이같이 기묘한 존재가 생겨났다고 한다.
이 짐승은 이후 철을 먹을 때마다 몸이 점점 커져,
강아지 정도의 크기로부터 수소만한 크기로 변화해 갔다.
그러나 손끝으로 대충 만들었기 때문에 개도 아니고 소도 아닌,
그야말로 괴물이라고밖에 할 수밖에 없는 기묘한 모습으로,
최후에는 꼬리에 불을 붙이자마자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고 전한다.
[물귀신 (수귀)]
이것은 일본의 캇파처럼 가까이 오는 인간을 강물 속으로 끌어당기는, 한국의 대표적인 요괴이다.
캇파의 유래에 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으나, 이 수귀는 익사한 사람이 변한 것이라고 한다.
이 귀신을 달래기 위해서는 제사를 행하고 음식을 공양해야 하는데,
일본에서도 수신에 관한 행사 중 위와 같은 일을 자주 행하며,
캇파를 물의 신으로서 숭배하는 지방에서는 캇파가 좋아하는 오이를 바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수귀에 대해서는 또 다른 독특한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공물을 바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 수만큼 유영의 명인을 고용하여,
그곳에서 익사한 시늉을 하게 한다, 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상대(이 경우에는 수귀)를 납득시키고
이 이상의 해를 입지 않도록 할 것인가, 하는 것으로,
이 방법은 한국인들이 수귀에 관하여 이런저런 지혜를 짜낸 결과이리라.
[야광귀]
이백 수십년 전,
한국 경성(현재의 서울)의 기사 • 풍속록인 『경도잡지』에 의하면,
야광귀라는 귀신이 밤마다 출몰하여 인가의 대문 안을 엿보았다고 한다.
야광귀는 자주 사람의 신발을 훔쳤고, 신발을 도둑맞은 사람은 반드시 화를 입었다고 한다.
경성의 아이들은 이 귀신을 두려워하여,
날이 저물기 시작하면 자신의 신발을 집 안에 숨기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그런 야광귀의 액을 피하는 방법이 있다. 문 밖에 큰 체를 걸어 두는 것이다.
야광귀에게는 묘한 버릇이 있어, 체를 보면 눈금이 몇 개나 있는지 세기 시작한다.
체의 눈금은 수도 없이 많으므로, 세고 있는 도중에 틀리게 된다.
그러면 다시 처음부터 세어 보지만, 몇 번을 세어도 틀린다.
이렇게 넋을 잃고 계속 다시 세는 도중에 시간이 흘러, 결국 날이 새고 만다.
야광귀는 태양을 가장 싫어하므로, 당황하며 도망치게 되어 문 안을 엿볼 수도 없고,
신발을 훔칠 겨를도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히토츠메코조(외눈박이 요괴) 역시도 체의 눈금을 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한일 공통의 민속 신앙이 있는 듯하다.
또한 야광귀라는 이름의 기원은「약왕(보살)」이라는 설도 있다.
[뱀 처녀(이무기 낭자)]
어머니와 둘이서 사는 청년이 어느 날 구걸을 하러 밖에 나갔다가 산 속에서 아리따운 처녀를 만났다.
처녀는 청년을 자기 집으로 불러들여 청년에게 식사를 대접했고,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를 위해 쌀과 돈을 준비해 줬다.
이것을 가지고 돌아오니 어머니는 크게 기뻐하며 그 처녀에게 감사했고,
한 번 더 감사 인사를 하고 오라고 아들에게 일렀다.
그래서 청년은 다시금 처녀의 집을 찾아갔다.
가는 도중에 청년은 일곱 도사를 만나
사실 그 처녀는 큰뱀이 둔갑한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게다가 그녀는 청년을 죽일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생명의 은인이라 여긴 청년은 처녀를 만났을 때 도사들에게 들은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러자 처녀는
"저는 뱀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도사들의 정체는 전갈로 저와는 원수지간입니다.
내일이야말로 결판을 내겠으니 내일 새벽에는 꼭 저를 당신의 색시로 삼아 주십시오." 하고 부탁했다.
청년은 그러겠노라 했다.
다음날 큰뱀과 전갈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됐다.
사투 끝에 큰뱀이 마침내 전갈을 쓰러뜨렸다.
큰뱀은 훌쩍 재주넘기를 해서 처녀의 모습이 되더니
약속대로 청년과 부부가 되어 어머니를 모시고 셋이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돌던지는 요괴 도깨비(요귀의 돌던지기)]
옛날 옛날,
30년 동안이나 대신을 지낸 창손이라는 권세가가 있었다.
창손이 아흔 살을 맞이한 해의 어느 날, 그의 집에 요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렇다고 모습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이 요괴는 돌을 던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그것도 백주 대낮에 뜬금없이 돌을 던지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런 해괴한 일이 계속되자 곧 항간에 그 소문이 퍼졌고,
사람들은 저마다 이것은 요괴의 소행이 틀림없다고 떠들어댔다.
크게 분개한 창손은 아무리 늙었다 한들
요괴 따위의 장난에 당해서야 되겠냐면서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지붕 꼭대기에 있는 귀와(도깨비 모양의 기와)를 노려보다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이 귀와를 태우기 시작했다.
돌이 떨어지는 원인이 이 귀와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창손은 요괴의 뒤탈이 두려웠으나 마침내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자 그 뒤로는 그렇게 항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요괴의 돌던지기도 뚝 그쳤고
아무런 기이한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창손이 귀와를 태워서 해괴한 일이 사라졌음을 알게 됐고,
그 중에는 나중에 틀림없이 무시무시한 재앙이 닥칠 거라고 수군대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아무런 뒷탈도 지장도 없었고, 창손은 매우 정정하게 무사히 살았다고 한다.
[연등 할머니]
옛날 옛날, 영동 지방에 사는 한 어부가 표류하다가 여인섬에 닿았는데,
그곳 여인네들의 애정 공세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떴다.
그 이래로 이 어부의 원귀는 2월 1일부터 한 달간 영동 지방을 찾아 집의 대들보에 깃든다고 한다.
이 한 달 동안은 공양물을 바치면서 영동신을 달래고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그리고 이 달에는 쌀을 사고 팔지 않는다.
만약 살고 팔았다가는 영동신의 노여움을 사서 가난해지거나 병에 걸린다는 것이다.
한편 강원도에는 연등 할머니(영동 할머니)의 전설이 있는데,
연등 할머니는 2월 초하루에 왔다가 보름날에 돌아간다고 한다.
이 기간 동안 어촌에서는 고기를 잡으러 나가지 않고 일을 쉰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연등 할머니는 나무 장대 12개를 세우고 신을 맞이하는데,
말머리 모양으로 생긴 나무를 골라 ***(도저히 못 알아보겠음;)를 해서 즐겁게 했다는데,
이를 '연등'이라 불렀다고 한다.
일본에도 연등 할머니와 비슷한 계보로 생각되는 신 혹은 요괴가 있다.
이즈모의 사다 신사에서 음력 10월에 실행하는
'오이미 마츠리' 기간 중에는 여러 가지 금기(삼가고 피하는 것)가 있다.
축제를 치르면 꼭 바다가 거칠어지면서
용뱀님이라는 바다뱀(얼룩바다뱀)이 바닷가에 밀려 올라온다고 한다.
이 뱀은 해룡의 사신으로 물과 불의 재난으로부터 몸을 지켜준다고 전해진다.
[용마]
백장군은 힘이 센 거구의 사나이로
한국에서는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인데 이런 무용담이 전해진다.
금호강으로 흘러드는 대구천 깊은 곳에 용마가 살고 있었는데,
이 용마가 날뛰면 홍수가 일어나 마을 사람들은 근심이 컸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백장군은 즉각 용마가 산다는 곳으로 향했다.
백장군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자기를 쏙 빼닮은 지푸라기 인형을 만들게 했다.
이 인형을 강물 깊은 곳에 놓아 뒀더니 얼마 안 있어 용마가 나타나 인형에게 접근했다.
꿈쩍도 않는 인형을 본 용마는 이 인형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흘 뒤
이번에는 인형 대신에 백장군이 몸소 깊은 강물 속에 서서 용마를 기다렸다.
여느 때처럼 용마가 다가오자 장군은 곧장 용마에게 덤벼들어 "씨름을 하자"고 말했다.
깜짝 놀란 용마는 구름을 불러 하늘로 올라가려 했으나
백장군은 용마에게서 손을 떼지 않고 같이 하늘로 올라갔다.
그 이후로 홍수는 없어졌지만 백장군은 지금도 하늘에서 용마와 씨름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가뭄이 이어져서 논밭이 바짝 마르면 백장군이 용마를 타고 나타나 비를 내려 준다고 한다.
[귀신 씌이다(빙의)]
옛날,
한국의 경기도 양주 땅에 살던 정 상국(상국은 총리대신에 해당하는 직위)의 집에
귀신이 나타나 그 집에서 일하던 하녀에게 들러붙었다.
그 이후로 귀신 씌인 하녀는 앞으로 일어날 온갖 화복길흉을 알려주게 됐다.
귀신이 하녀의 입을 통해 미래를 예언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언은 반드시 들어맞았다.
어느 날 정 상국의 이웃집에 사는 양반 부부가 금비녀를 잃어 버렸다.
이 부부는 자기 집 하녀가 훔쳐간 것이라 단정짓고 하녀를 모질게 꾸짖었다.
매질을 참다 못한 하녀는 귀신 씌인 하녀에게 진실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으나
그녀는 똑똑히 말을 하지 않았다.
역시 하녀가 범인일 것이라 여긴 이웃집 마님은 정 상국의 집을 찾아와 비녀가 있는 곳을 물었다.
그러자 귀신 씌인 하녀는
"들으면 당신 얼굴이 붉어질 것이니 말하기 어렵소."하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고 화가 치민 마님은 상스러운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마침내 하녀의 몸에 들어 있던 귀신이
"며칠 전 저녁에 옆집 남정네와 밭에 들어가지 않았소?
그때 밭 옆의 나뭇가지에 비녀가 걸려 빠진 것이오." 하고 말하자
얼굴이 홍당무가 된 마님은 그 자리에서 줄행랑을 쳤다.
정 상국네 집 하인이 물건을 훔쳤을 때도 귀신 씌인 하녀는 정확히 맞췄다.
이를 부정하며 펄펄 뛰던 하인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잠시 후 깨어난 하인은 자줏빛 수염을 늘어뜨린 남자가 나타나
자기 머리카락을 세게 쥐어뜯는 바람에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말했다.
[객신]
이것은 일종의 귀신 들리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가족 중의 누군가가 병에 걸리거나 고통을 호소하거나
미친 사람 같은 상태가 됐을 때 '객신이 씌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판단될 경우 집안 사람(혹은 친족 가운데 튼튼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음식물을 만들어서 환자 가까이 갖고 간다.
그리고 나서 칼 같은 것으로 환자의 온몸을 두들겨팬 다음
그 칼을 문 밖으로 가지고 나가 떨어뜨린다.
칼날이 바깥을 향하면 "객신이 나갔다"는 뜻으로,
갖고 들어갔던 음식물을 모조리 버리고 환자가 회복되기를 기다린다.
반대로 칼날이 집 쪽을 향하면 객신이 아직도 들러붙어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환자는 더욱 심하게 두들겨맞는다.
이 행위는 칼날이 바깥쪽을 향할 때까지 계속된다.
일본에서도 옛날에는 여우가 씌었다고 판단될 경우 이 같은 원시적인 방법월 취했다.
정신병 환자에 대해서물고문을 가하거나 육신을 괴롭힘으로써
정상으로 돌려놓으려 시도한 것인데 심한 얘기다.
한국에는 객신과 비슷한 요괴로 객사귀라는,
역시 귀신 들리는 것과 흡사한 잡귀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이 요괴를 처치하려면 동전을 종이에 싸서 어느 지점에 버리면 된다.
객신처럼 환자의 육신에 고통을 가하는 일은 없다.
[바위신]
아이 없는 부부가 출산을 관장하는 신(=삼신)에게 소원을 비는 예는 많지만,
한국에서는 삼신 말고도 자연의 정령에게 비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뿌리 부근이 뻥 뚫려 있는 산 속 나무나 서로 끌어안고 있는 형상의 돌 등을 찾아서
소원을 비는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또 강원도의 어느 지방에서는 아이 없는 여인이
남몰래 산 속 바위에 아이를 점지해 달라고 빌곤 한다고 한다.
이렇게 소원을 비는 모습에서는 수험생 같은 자세가 느껴진다.
기도를 올릴 날이 정해지면 그날 저녁 무렵에 집에서 나와
깨끗한 물에 목욕을 하고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한다.
그리고 나서 흰 베 3척(길이는 홀수인 것이 좋다)을 준비하고,
말린 생선, 깨끗한 물에 7번 내지는 9번 씻어서 완전히 뽀얗게 된 쌀로
산 속에서 밥을 지어 기도를 드리려는 바위 앞에 차려놓는다.
남몰래 혼자서 치른다고는 해도 어엿한 의식이라 할 수 있겠다. 의식은 이제부터다.
밥 위에 흰 실 한 가닥을 얹고, 실의 한쪽 끝을 바위에 붙인 뒤
다른쪽 끝을 그 옆의 나뭇가지에 묶는다.
소원을 비는 사람은 그 앞에 앉아서 그로부터 2~3시간 가량 꿈쩍도 않고 묵도를 한다.
그러는 사이 일종의 영감에 사로잡히면 그것을 아이를 내려주는 신의 계시로 여긴다.
계시를 받은 여인은 신에게 감사를 드리고 기쁜 마음으로 산에서 내려온다.
하룻밤 내내 묵도를 올렸는데도 별 다른 영감을 얻지 못한 경우에는
날짜를 다시 잡고 성심을 다해서 기도를 되풀이한다.
[석불]
조선 성종 임인년,
개녕현 송방리에 사는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는데,
흙 속에서 돌부처 하나가 발굴됐다.
눈, 코, 입, 귀 모두 닳아 빠져서 볼품없을 정도였지만
불상인지라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밭고랑에 세워 뒀다.
천식으로 고생하던 마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돌부처에 빌었더니 그 병이 금방 나아졌다.
곧 소문이 파다해져서 자식 없는 부부, 색시를 얻으려는 사람,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 등등 빌 것이 있는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참배 드리러 찾아왔고 공양물도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러는 사이 한 스님이 와서 향과 꽃을 단속하며 시주를 받아 기와 건물도 지었다.
번듯한 건물에 모셔진 돌부처는 영험 있는 부처님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돌이 많은 나라인 한국에서는 돌을 영험한 것으로 여긴다.
정령 혹은 혼령이 무엇에 씌이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필자는 말레이시아의 세노이족을 만났을 때 겪었던 정령 체험에 비추어 보건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고 아픈 사람을 도와 주기도 한다고 믿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돌에 나타난(혹은 돌에 씌인) 정령이
인간의 운명을 조금이나마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준 것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생명체를 염려하는 존재가 분명히 있다고 본다.
[제석]
제석은 집안의 가장인 남자의 명운을 관장하는 한국의 신이다.
집안 가장 깊숙한 방에 있는 벽장에서 산다고 하는데,
신상(神像)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고 그 생김새조차도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흰 도자기함에 콩 한 되 삼합과 비단 일곱 필을 담아서
이 벽장 안에 모셔 두는 것이 관습인 듯하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절대로 손대지 않다가
매년 2월 1일 대청소 때 내용물을 새 것으로 간다.
신상은 없지만 집안신이라는 것은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으로,
여기에 신령님이 있다고 가르쳐 주면
대개는 순순히 받아들이고 신앙심이 뿌리내리는 법이다.
일본 역시 옛날에는 집안 여기저기(예컨대 부뚜막에서 화장실에 이르기까지)에
신령님이 있다고 믿었다. 결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존재는 누구나 항상 의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요컨대 '정령'을 확대해석한 셈이다.
[도깨비불]
안씨라는 남자가 소년 시절에 동복(어린애의 시중을 드는 하인)을 거느리고
말 타고 멀리 가려 한 적이 있다.
그날 밤은 완전히 캄캄했고 도중에 마주치는 사람 하나 없었는데,
1리 정도 왔을까 싶을 때 갑자기 눈 앞이 환하게 밝아졌다. 마치 횃불을 밝힌 듯했다.
이상하게 여겨 말을 멈추고 잠시 보고 있으려니 그 불꽃이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이상하다고 여길 틈도 없이 안씨는 그 불에 둘러싸였다.
퍼뜩 정신이 들었을 때는 불바다 속이었고 불길은 반 리나 걸쳐 있었다.
"도깨비불이구나." 가까스로 깨달은 안씨는 채찍을 휘둘러 말을 쏜살같이 달리게 했다.
한참을 달리다가 뒤를 돌아보니 도깨비불은 완전히 사라졌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이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안씨는 더욱 말을 달려 구불구불한 비탈길을 내려갔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말을 타고 가는데
아까의 도깨비불이 다시 나타나 안씨의 가는 길을 막아섰다.
안씨는 캄캄한 밤에 멀리 나온 것을 새삼 후회하면서 칼을 뽑아들고
괴성을 내지르며 결사적으로 도깨비불 안으로 돌진했다.
그러자 맹렬하게 너울거리던 도깨비불은 옆의 덤불 속으로 흩어져 사라졌고,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이 섬뜩한 박수소리와 함께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커다랗게 들려왔다.
개드립 - 스압)일본 요괴 전문 만화가가 연구한 한국요괴들 ( https://www.dogdrip.net/348356714 )